점심으로 돈수백이란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더랬다. 다 먹고서는 티슈로 입 주변을 닦았는데 피가 묻어나왔다.
양쪽 입가에서 묻어 나오길래 입술이 건조해서 갈라지는 바람에 피가 났나하고 생각했다. 입술 끝에 티슈를 지긋이 대고 있어봤지만 피는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새 튼 곳이 아물었나?
식당에서 나오는데 입안에 피맛이 감돌았다. 응? 침을 뱉어보니 붉은 빛이 어른하다. 잇몸이나 치아가 아픈 느낌은 없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난다.
잇몸에서 피가나나..? 보통은 양치하다 피가 나도 금방 멈췄는데 계속 나고 있다.
치과를 가봐야하나..? 여기 근처에 치과 간판을 본 것 같은데 그리로 가볼까?
양치를 하고 나니 피가 좀 멈추어서 잇몸 건강에 대한 걱정은 조금 줄었다.
혓바늘이 난 것 같다. 거울에 혀를 비추어보미 혀끝 오른쪽에 혓바늘이 난 모습이다.
그제서야 나는 밥을 먹다 혀를 깨문게 생각이 났다. 밥을 먹고 나서부터는 혓바늘과 같은 느낌의 신경쓰임과 통증이었던지라 마냥 혓바늘로만 생각했다. 헌데 그게 아니라 혀를 씹어서 피가 났던 거고, 혓바늘이 아니라 그냥 혀에 상처가 난 거였다.
내 몸이고 내 입속이니 상처에 대한 피드백은 당장에 내가 알 수 있을건데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잇몸에서 피가 나는 줄로만 생각했다.
내 몸의 문제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데, 실재하는 문제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인지하거나 해결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게도 쉽지 않은 것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Open PaaS 사업이 2차년도에 접어들면서(일정상으로는 3월부터 2차년도 시작이지만 올해 초부터 이미 2차년도 일이 진행되었다.) 업체별로 개발 범위가 정해지고 예산이 책정되고, 클라이언트가 없이 요구사항을 도출하고, 유스케이스를 작성하고 있다.
프로젝트 특성상 여러업체가 참여하고 있다보니 용어가 하나로 일치되지 않고, 혹은 일치되었더라도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는 일이 종종있다.
더군다나 나같은 경우에는 1차년도에 분석했던 OpenShift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업체가 분석했던 CloudFoundry를 기반으로 개발을 진행하다보니 같은 말인 듯 다르게 생각하거나, OpenShift는 이렇지 않은데 CloudFoundry는 왜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쨌거나 유스케이스의 액터의 역할이 정확하게 정의되어있지 않고, 다르게 알고 있던터라 오전에 다른 업체, 품질팀의 수석님과 함께 액터 도출 및 역할 정의에 대해 회의를 했다.
역할은 어느정도 정해졌지만, 액터명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하고 정하긴 했지만 나에게는 영 석연치않다.
이를테면 PaaS에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조직을 관리하는 액터의 이름은 Paas사용자(관리자) 로 정해졌다.
기존에 같은 역할의 액터 이름은 애플리케이션 관리자였는데 이는 애플리케이션을 서비스할 때 운영하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해서 이를 새로이 정한 것이다.
애플리케이션 관리자보다는 조금은 역할을 포괄하는 의미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보다 명확한 액터 이름으로써 정해졌으면 했다.
조직 관리자로 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CloudFoundry에서 사용하는 Organization과 용어가 겹쳐서 새로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혼동의 여지가 덜하겠지만, 현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헷갈릴 수 있기 때문에 수용되지 않았다.
이런 쪽, 저런 쪽으로 의견을 내어보아도 이미 서로가 어느정도 생각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해하거나 설득하기가 어렵다.
이쯤되면 나는 더이상 의견을 내고 설명하고 설득하는데 지쳐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현재 상태에서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상의 포기인 셈이다. 계속해서 얘기해도 벽에다 얘기하는 기분이 들기때문인데, 어쩌면 상대도 비슷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보통 나는 상대의 의견을 따라가는 편이 된다.
이런 상태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져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내야하는 건지, 이쯤에서 합의를 하고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거나 거론하지 않아야 하는건지, 답이 있는지 모르겠다.
비단 오늘의 이 회의 뿐만이 아니라 이전에도 그러했다. 상대의 논리가 명확해서 거기에 깔끔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별로 없었고, 사실 논리를 떠나서 이해득실이나 개개인 또는 단체의 욕심도 이 문제에 개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서 '봐라. 그때 내가 맞았니', '니가 맞았니' 해봐야 그때에 바꿀 것이 아니고서야 마음의 응어리를 덜어내는 것 말고는 바뀌는 것이 없다. 반대로 누군가는 응어리가 질 수도 있는 거고.
괜히 퍼실리테이터 같은 직업이 나오고 필요로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회의로 인해 인력, 심력,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꼭 완벽한 답은 아니더라도 적정선에서 합의를 보고 결과를 내야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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